비록 떨어져 있어도
Divided We Stand

인사말

분리를 넘어서
최태만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

2018부산비엔날레는 많은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전시 기획자를 선임하기 위해 국제 공모라는 절차를 도입한 점과 새로운 공간으로 전시장을 이동한 점은 모험에 가까운 과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공개 모집을 통해 크리스티나 리쿠페로와 외르그 하이저를 전시 기획자로 모실 수 있어 기쁩니다. 두 분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시대가 직면한 문제들을 회피하거나 우회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드러냄으로써 비엔날레가 토론과 논쟁을 거쳐 유효한 담론을 생산할 수 있는 열린 장(場)이 될 수 있다고 제안해 왔습니다. 〈비록 떨어져 있어도(Divided We Stand)〉는 바로 그 정신이 구현된 주제입니다.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 주제는 이솝 우화의 하나인 〈네 마리 황소와 사자〉에서 비롯한 속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의 어순을 바꾸고 축약하여 탄생했습니다. 한국인의 귀에 익숙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1945년 귀국하면서 가진 기자 회견 이후 반복적으로 외친 구호였습니다. 그러나 이승만보다 훨씬 오래 전인 1597년 9월 16일 명량해전을 앞둔 이순신 장군은 병사와 백성들을 모아 놓고 ‘단결하면 살고 흩어지면 죽을 것이다(團生散死)’라고 역설했습니다. 물론 1768년 존 디킨슨 신부가 《보스턴소식》에 쓴 〈자유의 노래〉에도 유사한 말이 등장했듯이, 역사상 어느 시기든지, 또 세계 어디든지 공동체의 지도자들은 전쟁 같은 극단적인 위기의 상황에 맞서 항상 단결, 연대, 동맹을 강조해 왔습니다.
〈비록 떨어져 있어도〉는 국가와 같은 공동체의 생존을 위해 동원하거나 주조한 ‘단결’이란 정치적 구호를 뒤집어 보자는 데 그 첫 번째 의의가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20세기 동안 세계는 여러 종류의 분단, 분리, 분할, 분열에 시달렸습니다. 식민주의 시대에 자행된 영토의 분할은 본토의 거주민을 추방시키거나 지배 논리에 종속된 피지배 계급으로 전락시켰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동서 냉전 체제는 한반도의 분단과 한국 전쟁에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물리적 분할과 분리는 당대에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에 이르기까지 치유하기 어려운 심리적 상흔이라는 유산을 상속시킵니다. 두 기획자가 이번 비엔날레를 통해 주목하고자 한 것이 바로 이러한 비극적 유산으로서의 트라우마이며, 그것은 비단 특정 지역, 국가에 귀속된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가 겪고 있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냉전 이후의 시공간을 ‘탈냉전’이 아닌 ‘냉전으로의 회귀’로 파악하고자 한 이유도 바로 이 지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분단, 분할, 분리를 획책한 냉전 시대의 괴물은 사라졌다기보다 ‘전지구화’, ‘신자유주의’라는 이름 아래 더욱 근육질의 덩치를 키워 분리를 강화하며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선보이는 많은 작품은 바로 이러한 문제에 대한 깊은 고민과 문제 제기, 나아가 저항 정신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번 비엔날레를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고 진지하며 고통스럽게 만드는 요인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여 작가들이 새로 그려 놓은 ‘분할된 영토의 심리 지형도’를 통해 그 속에 가로놓인 장벽의 실체까지 인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비록 떨어져 있어도〉는 이 장벽이 만들어 놓은 은폐와 침묵, 배제의 논리를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한 것입니다.
두 번째로, 2000년 이래 부산비엔날레는 부산시립미술관을 중심으로 대체로 동부산 지역에서 개최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부산비엔날레 전용관으로 계획된 부산현대미술관이 올해 을숙도에 개관함에 따라 주요 전시 공간을 서부산으로 옮겨 갑니다.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한 을숙도는 생태 환경 공원이자 부산현대미술관의 개관과 함께 서부산 지역 문화예술의 거점으로 성장할 풍부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개최하는 부산비엔날레는 동부산 지역에 비해 문화시설이 부족한 서부산 지역의 문화를 활성화시키고 국제적인 해양도시 부산의 균형적인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나아가 제1회 부산청년비엔날레가 1981년 부산의 원도심에 있던 여러 화랑에서 개최된 점을 상기하고, 부산을 찾는 관객 여러분이 부산의 역사와 문화, 도시적 특성을 파악하는 것은 물론 부산비엔날레가 도심 재생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 구 한국은행 부산본부 건물을 올해 또 하나의 전시 공간으로 선정했습니다. 지난 2014년 및 2016년 부산비엔날레가 수영의 F1963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함으로써 공장 부지를 문화 공간으로 바꿔놓은 것처럼, 이번 비엔날레는 한국 근현대사의 살아있는 현장인 원도심을 또 하나의 전시 장소로 활용하여 전시의 주제와 방향이 부산으로부터 발신하는 평화의 메시지이자 대화의 제안이라는 점을 보여줄 것입니다.
끝으로 크리스티나 리쿠페로와 외르그 하이저, 두 기획자와 전시 기획을 도와주신 네 분의 어드바이저 및 객원 큐레이터, 전시의 실행을 위해 헌신과 희생을 다해주신 모든 스태프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2018부산비엔날레의 주인공은 누구보다 훌륭한 작품을 출품해 주신 작가 분들입니다. 참여 작가들께도 깊이 감사드리며 2018부산비엔날레를 기억해 주실 것으로 믿습니다. 또한 이번 비엔날레를 구현하기 위해 협력과 협업의 정신으로 함께 해 주신 부산광역시 관계인사, 비엔날레를 위해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와 존경의 인사를 드립니다.